문서전달자들
김뉘연

문서제작자는 없다. 문서의 내용과 함께.

 

“사건은 한 번 일어나는 데서 그치지 않고 다시 찾아온다.”[ 1 ]

사건은. 한 번 일어나는. 데서 그치지 않고. 다시 찾아온다.

글줄로 쓰인 문장을 끊어 읽는다. 좀처럼 한번에 읽지 못한다. 호흡을 길게 유지하지 못한다고 해야 할까, 잠깐씩, 이를테면 이런 식으로, 사건은, 읽고, 기다린다. 눈을 잠시 감았다 뜬다. 조금 전으로 돌아간다. 사건은, 기억했다. 이어 읽는다. 한 번 일어나는. 과거와 현재를 이어 본다. 사건은 한 번 일어나는. 계속 가 본다. 데서 그치지 않고.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사건은 한 번 일어나는 데서 그치지 않고. 미래를 기다릴 필요가 있다. 다시 찾아온다.

사건은 한 번 일어나는 데서 그치지 않고 다시 찾아온다.

발견된 문장에서 지나가는 시간과 다가오는 시간을 본다. 과거와 미래는 사건으로 만난다. 여러 호흡으로.

현재는 이후에 온다.

 

문서전달자들은 분주하다. 움직이는 사람들. 그들은 벽을 따라 간다. 그들은… 일단 그들이기로 한다. 그들은 스스로를 설명하지 않는다. 그들은 틈을 내지 않는다. 그들은 쉼 없이 움직인다. 벽을 따라 이동한다. 벽은 그들을 안내한다. 벽은 그들을 인내한다. 벽은 그들을 받아들인다.

바닥은 그들을 밀어낸다.

문서전달자들은 분주하지만 그다지 빠르게 이동하지는 않는다. 그들은 빠를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그들을 느리다고 말해야 할 수도 있다. 그들은 제 몸을 이용해 움직임의 속도를 조절한다. 팔꿈치가 벽에 닿고, 어깨를 이어 부딪히고, 거기 이마를 맞대고, 허벅지를 붙여 본다. 그렇게 몸의 부분들을 순차적으로 의지하며 나아간다. 몸 구석구석에 멍이 들고 그것을 개의치 않는다. 엇비슷한 얼룩들이 번져 간다. 서로의 몸이 닮아 간다.

바닥은 그들을 계속 밀어낸다.

그들이 어디서 시작되었는지 가늠하기는 어렵다. 어딘가에 벽이 있으면 어딘가에 그들이 있으리라 짐작할 뿐이다. 벽은 어느덧 있게 된다. 벽은 불현듯 있어도 된다. 벽과 그들은 필연적인 관계를 맺는다. 어떠한 필요와 상관없이. 그렇다면 벽이 시작된 곳이 그들이 시작된 곳이다. 그들은 벽과 함께 시작되었다, 그렇게 말할 수 있다, 그렇게 적을 수 있거나, 그들은 적혀 간다.

그들이 어디서 나타났는지, 라고 쓰지 않는다. 그들은 나타나지 않는다. 그들은 나타날 수 없다. 그들이 나타남을 거부하고 있는지도 모르지만, 그보다는 그들이 나타남이라는 현상을 인식하지 못한다고 여겨야 그들에게 좀 더 가까워질 수 있을 것 같다. 그들은 시작되었을 뿐이다. 시작된 사람들.

바닥에게서 밀려난.

그들이라고 적고 있지만, 그들에게는 그들이 아니다. 그들은 그들과 다니지 않는다. 그렇다면 그들이라고 부르지 않아야 할 수 있다. 그들은 각자 움직인다. 움직이며 탐색한다. 탐색은 그들의 주요한 속성이 된다. 탐색하는 데 익숙한 그들은 서로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한다. 그들은 그들을 인식하지 못한 채 계속 탐색한다. 그들은 그들을 인식하지 못했기에 계속 탐색할 수 있다. 그들 사이의 거리는 그렇게 획득된다.

바닥은 그들을 연결한다.

문서전달자들에게 부여된 이름은 문서를 전달한다는 행위와 목적을 가진다. 그러나 그들이 문서를 전달하는 모습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다시, 그들은 나타나지 않는다. 그들은 움직인다. 그들은 이동한다. 이동을 위한 움직임, 이것이 그들의 주요한 일이다. 그들이 움직인 자취가 어딘가에 어떠한 형태로 남을 수 있지만 남겨진 것은 그들이 의도한 바가 아니다. 그들은 자신이 남기고 있음을 알지 못한다. 그들은 자신이 남기는 것들을 알지 못한다. 그들은 여전히 나타나 있지 않으며 여전히 벽을 따라 가고 있다.

그들은 스스로가 문서전달자임을 알지 못한다. 그러하기에 그들은 문서전달자 됨을 거부할 수 없다, 타고난 문서전달자들과 같이. 그들은 타고난 문서전달자가 아니지만 타고난 문서전달자와 다를 바 없다. 달라지는 것은 없다. 문서는 언제든 전달될 수 있으리라 여겨진다. 문서전달자들은 언제든 문서를 전달하게 되리라 여겨진다. 도래하지 않는 시간을 공유하는 문서와 문서전달자들은 하나의 타고난 운명을 가진다.

문서가 문서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이라면, 문서전달자들은 가능성을 이동시키는 자들이다. 이동되는 가능성은 어떠한 역할을 하지 않는다. 위치가 바뀌고 있을 따름이며 그것은 가능성의 의도가 아니다. 문서전달자들이 문서를 전달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자들이라면, 문서전달자들은 가능성으로서 가능성을 이동시킨다. 복수의 가능성은 가능성을 증폭시킬 수 있지만 가능성을 이루는 데는 무력하다. 가능성은 가능성으로 남는다.

문서와 문서전달자는 서로를 공유한다. 문서와 문서전달자는 서로의 대상이기도 하다. 벽과 문서전달자들의 필연적인 관계는 문서전달자들과 문서의 사이에서 반복된다.

문서전달자들이 문서를 앞서려 할 때가 있다. 문서전달자들은 그러한 상황을 깨닫지 못한다.

문서가 문서전달자들을 앞서려 할 때가 있다. 문서는 그러한 상황을 깨닫지 못한다.

문서전달자들은 문서를 배경이라고, 인물이라고, 사건이라고 부를 수 있다.

문서는 문서전달자들을 사건이라고, 인물이라고, 배경이라고 부를 수 있다.

문서전달자들은 문서를 접거나 구길 수 있고, 찢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문서전달자들은 문서를 손에 쥐거나 주머니에 넣을 수 있다. 문서는 문서전달자들의 옆구리 사이에 끼여 있거나 목에 걸려 있을 수도 있다. 문서는 문서전달자들의 머리 위에서 문서전달자들을 내려다보기도 한다.

문서는 바닥에 가까워지지 않는다.

 

사건은. 한 번 일어나는. 데서 그치지 않고. 다시 찾아온다.

그런 것이 가능성이라면.

현재는 이후에 온다.

그렇다고 한다면.

 

 

 


{오픈셋} ⊂ 쿼드리엔날 (2021) 
 

국립현대미술관 창동레지던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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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출, 구성: 뭎
출연: 박래영, 손민선, 조형준, 한아름
소리: 정진화
진행: 홍혜진
벽: 무단횡단
영상기록: 엽태준
사진: 최연근

  • [ 1 ]

    올리비아 로젠탈, 『적대적 상황에서의 생존 메커니즘』, 한국화 옮김, 알마, 2020년, 7쪽

  • 김뉘연

    시인. 『모눈 지우개』 『부분』 『문서 없는 제목』 『제3작품집』 등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