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들
김뉘연

다가올 시간을 그려 보던 그날, 그들은 지나간 시간을 더듬어 헤아리는 행위에 대해 오래 이야기했다. 특정한 시간을 함께 통과했다는 사실을 지나고 나자, 과거에 대한 각자의 기억이 다 다른 채로 남아 있었다. 모두 다른 기억을 가진다는 것이 함께 보낸 시간의 현상으로 남는다. 편파적이고, 공평하다. 겪어야만 알 수 있는 지점을 몸으로 자연히 알게 되는 동시에 겪고 나서도 여전히 알지 못하거나 알 수 없는 상태에 머물러 있는 채다. 이 문장은 시간을 둘러싼 정의의 부분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시간예술로서 공연을 경험한다는 좀처럼 벗어나기 어려워 보이는 전제, 체험이라는 것의 진실과 허위… 출구 없는 미로를 닮은 생각을 하며 문서를 읽는다.

 

2024년 7월 27일, 오후 5시 이후. 시간을 기록해 둔다.

 

문서의 부분은 편지다. 편지는 벽보로 붙어 있다. 그들은 과거에 여러 통의 편지를 주고받았고, 그러니 여기서 보게 되는 것은 남이 남에게 쓴 편지다. “‘무대’와 ‘조각’의 성격들이 한데 합쳐져서 이상하게 섞여 있는 곳”(2022년 8월 6일 자 편지)에서, 편지는 “공연이 연습이 되고 연습이 공연이 되는”(2022년 8월 27일 자 편지) 과정을 드문드문 설계해 나간다. 편지에 따르면 그들은 편지를 쓰고, 보내거나 보내지 않고, 받고, 읽고, 연습하고 공연했고, 공연하고 연습했다. 과거의 시공간에서 실현된 편지가 시간의 증거로 이곳에 전시되어 있다.

전시장이자 공연장인 이곳에는 무대로서의 공간이 설계되어 있다. 무대의 곳곳을 편지를 비롯한 여러 문서와 사물이 점유하며, 이곳을 방문한 이들은 무대 위 곳곳을 누비며 문서를 읽고 사물을 접할 수 있다. 그러다 어떤 시간에는 무대의 한곳을 차지한 저들을 보게 된다. 저들은 탁자를 둘러싸고 의자에 앉아 있다. 말이 들린다. 대화가 진행되고 있다. 누군가 저들에게 다가가 불쑥 혹은 태연히 말을 걸어도 될 것 같다. 바깥의 시선으로 바라볼 때 모두가 같은 무대에 등장해 있기에. 그러나 누구도 말을 건네지 않는다. 저들은 공연 중인 상태이고, 이들은 관람 중인 상태이다. 어느 누구도 약속하지 않았지만 저들과 이들은 하나의 무대 위에서 각자의 상태를 지켜 낸다.

나에게 다가오지 않는 그들을 보면서, 나는 이곳을 믿을 수 있게 된다.

 

편지의 내용은 어떠한 형태로 실현되어 있기도 하다.

“완성은 안 되었지만, 혹시나 저희가 썼던 편지가 궁금하실까 봐 기둥 옆 돌멩이 아래에 끼워 둘게요.”(2022년 8월 24일 자 편지)

공간을 배회하던 중, 한쪽에 귀퉁이가 접힌 문서가 돌멩이 아래에 끼워져 있음을 본다. “공간의 조각들”이라는, “재구성하시오”라는, 글의 조각들이 발견된다.

이 문서가 앞선 편지에서 가리키는 편지인지 알 수 있는 증거는 없다. 그럼에도 나는 이 문서를 그 편지라고 믿기로 한다. 그것이 굳이 동일한 방식으로 구현되어 있기에, 그렇다면 지금 이곳의 이것을 그것으로 받아들이겠다고 생각한다.

이곳에서의 수사는 약속을 발견해 지켜 가는 것이라고 믿어 간다.

 

남이 남에게 보낸 편지를 읽는다는 것은 일종의 비밀에 동참하게 되는 동시에 이것이 더 이상 비밀이 아님을 알게 되는 일이다. 애초에 비밀이 아니었을 수 있다. 비밀의 여부는 중요하지 않아진다. 출구 없는 미로를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는 나에게, 관람 중이던 한 사람이 다가온다. 그리고 접혀 있는 문서를 건넨다.

문서를 받는다. (펼쳐지지 않았을 때, 그것은 여전히 비밀한 편지이다.)

관람 중이라 여겼던 한 사람은 공연 중이었다.

한 사람은 어느새 사라져 있다. 나는 금세 그를 잃어버린 채다.

손에 든 문서를 받아 펼친다.

벽에 공개된 편지다.

 

다시, 문서로서 걸려 있는 편지를 향한다.

그러니까 문서라는 형태가 있다는 것. 상자와 같이 무언가를 담고 있는. 실체가 있다는 것. 접혀서 전달된다는 것. 펼쳐진다는 것. 접힌 자국이 남아 있다는 것. 흔적을 지닌 채 펼쳐져 있다는 것. 그렇게 벽에 걸려 있다는 것.

문서가 널려 있다는 사실에 안도한다.

문서가, 사물이, 사람이, 모든 것이 사방에 흩뿌려져 있다는 사실이 나를 만족시킨다.

이곳에 정교하게 배치되었을 이 모든 것이 단 하나도 정리되지 않기를 원한다.

“공연으로도 갈 수 없고, 다른 연습으로도 연결될 수 없는”(2022년 8월 24일 자 편지) 이곳에 발이 묶인 채로, 이러한 상태를 유지하게 되기를 원한다.

아무 곳으로도 나아가지 않은 채 이곳에 흩어진 조각들을 계속해서 조합하고 재조합하기를 원한다.

이곳의 흩어짐이 무슨 상자 비슷한 것에 담겨진 채 흩어져 있는 상태를 유지하기를 원한다.

그러니까 이것은 나의 바람이다. 비밀 같은 것이다. 지키고 싶다고 해서 지켜지지만은 않는, 이루고 싶다고 해서 이루게 될 수만은 없는 그런 상태이다.

부분을 모은다는 것은 애초의 형태와 전혀 다른 무엇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그러한 상태를 받아들이기로 마음을 먹고, 그러한 상태를 믿어 가는 것이다.

그것이 지나간 시간을 기억하는 유일한 길이다.

 

그러나 문서가 무슨 상자 비슷한 것이라면, 그것을 던져 엎어 쏟아 버릴 수도 있을 것이다.

만든 것을 다시 던져 버릴 수 있는 사람들. 그들의 이름을 문서에 적어 둔다.

그들에게 편지를 보내기는 어려울 수 있다.

 

편지를 쓸 수는 있다.

 

 

 


멈춰라, 시공간 (2024) 
 

스튜디오 오픈셋

2024.7.3.(수) - 7.31.(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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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성, 연출: 뭎 
기록 및 편집: 이한범

조사관: 맹나현

사설탐정: 녹스(이소여), 베일리(전혜인), 피셔(성재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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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기록: 이현지

사진기록: 최연근, 김수진

사후기록물디자인: 유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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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예술창작활동지원사업 선정 프로젝트

  • 김뉘연

    시인. 『모눈 지우개』 『부분』 『문서 없는 제목』 『제3작품집』 등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