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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죽은 줄 알았던 공연에 대한 목격담이다. 이미 죽어버린 것을 다시 목격하는 일이 어떻게 가능할까? 돌이켜보면 나는 공연이 시작도 하기 전에 그 공연의 목격자였다. 첫 번째 시작은 공연 전 뭎이 제시한 괄호에서였다.
“어쨌건 마지막 공연의 제목은 《아무것도 없는데 페르시아 왕국은 초토화됐다》입니다. 이번 작업을 계획하면서, 제일 처음 떠올렸던 문장이기도 한데 도무지 이 문장에서부터 어떤 것을 시작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어요. 원인이 부재한 이 문장은 대뜸 결과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는데, 결국 우리는 이 문장으로 돌아오기 위해 연습과 공연의 과정을 거쳐왔는지도 모르겠어요. 사실 이 문장은 앞에 무언가가 생략되어 있어요. ( ) 아무것도 없는데, 페르시아 왕국은 초토화됐다. 생략된 원인에서부터 상상할 수 있는 것들은 오히려 무한해지는 것 같아요. 원인에 따른 결과를 상상해 보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라 생각되지만, 사실은 원인을 모른 채 결과만을 맞닥뜨리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연습이 원인이라면, 공연은 대뜸 결과를 맞닥뜨리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공연에서 무엇이 죽었는지 알 수 없지만, 나는 이미 죽어버린 것들을 목격하였다. 죽음의 시점과 원인은 불명하나 괄호 사이의 공백과 관련된 것만은 분명하다. 죽은 것을 목격하거나 소환하는 일은 특수한 일은 아니다. 시대와 문화권에 따라서 인간은 죽음을 다루는 다양한 방법을 익혀 왔다. 가령, 실종 포스터는 사라짐에 대한 모든 정보를 가시적으로 압축한 매체다. 탐정을 불러 현장에 즐비한 단서 사이의 연쇄 고리를 추적하여 인과관계를 파악하거나, 영매를 불러 우리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목소리를 찾아 듣기도 한다. 그런데 나의 경우에는 죽음을 소환할 재량도, 자질도 없이 그저 문득 죽은 것을 우연히 목격하게 된 것이다.
의자-조각
첫 번째는 무너진 의자 더미였다. 《멈춰라, 시공간 Stop, Time-Space》을 위해 뭎이 두산 갤러리에서 선보인 〈4p8p: 8번의 연습과 4번의 공연〉(2022)의 목격담을 수집해달라고 한 메일을 받기 3일 전, 나는 뉴욕 맨해튼의 14번가에 있었다. 그날 하이 라인 공원 위 퍼포먼스를 보러 유니온스퀘어 역으로 향하고 있었는데, 거리에서 한 사람과 마주쳤다. 주로 속보로 도시를 돌파하기에 평소에는 광인을 오래 마주치는 일이 없었지만, 그날은 기묘하게 그 사람을 무시할 수 없는 힘이 있었다. 검은 얼룩의 남색 저지와 구멍이 밑단에 잔뜩 뚫린 카고바지를 입은 그는 거리의 가운데에 서서 무언가를 중얼거리고 있었다. 그가 소리를 지르며 움직이자 그의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그가 움직인 만큼 거리를 확보하여 그를 피했다. 마치 그의 주변에 원형의 막이 있어서 그 막이 사람들을 밀쳐내는 모양새였다. 그의 중얼거림은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또 무시하기에 그리 작지도 않은 정도였다. 소규모 연극에서 가장 앞 두 줄에 앉은 관객이 별다른 집중을 하지 않아도 대사를 또렷이 들을 수 있는 정도의 음량이었다. 그는 한바탕 소리를 지른 뒤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응시하며 무언가 중얼거렸는데, 나는 지나갈 타이밍을 지켜보고 있다가 그가 몸을 꼿꼿하게 펴는 순간 그의 옆을 지나갔다.
의자들은 바로 그다음 돌연 등장했다. 그의 뒤로 있던 검은 쓰레기 더미에 가려져서 보이지 않았던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갑자기 떨어진 소행성처럼 그 자리에 등장하였다. 나는 그 의자를 전에 본 적 있었다. 2022년 뭎은 〈4p8p: 8번의 연습과 4번의 공연〉에서 퍼포머와 함께 무대를 들락날락하며 의자-조각-더미를 만들었다. 관객들은 천천히 주변에 있던 의자를 땅바닥에 엎기도 하고, 세우기도 하고, 돌리기도 하다가, 비스듬한, 서 있는, 누워 있는 의자들이 더미로 쌓이는 것을 지켜보았다. 사전에 아무런 안내가 없었기에 관객들은 최대한 꼼꼼하게 의자와 퍼포머의 움직임을 살펴보았다. 그 과정에서 의자도 퍼포머가 되었다. 물론 그때 그 의자들은 더 이상 그 공간에 없다. 전시가 철수한 뒤 무너지고 사라졌다. 전시장을 떠난 뒤 의자의 행방은 묘연했다. 바로 그 의자들을 나는 보았다. 나는 갑작스레 소리를 지르는 미친 사람을 만났을 때보다도 더 큰 충격에 그 자리에 멈추어 섰다. 그날의 의자가 어떻게 여기에 있는가? 전시장에서 보았던 의자와 겉으로 보기에 닮은 구석은 없었다. 전시장의 의자는 옅은 베이지색과 흰색이었다면 거리에 있는 의자는 고동색과 검은색이었다. 그러나, 분명 같은 의자였다. 나는 순식간에 얼어붙은 2년 전 관객이 되었다.
지진-유령
나는 의자 더미의 모양새가 그날의 의자를 연상했을 뿐이라고 자신을 달래며 가까스로 그 자리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날의 공연이 죽지 않았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는 두 번째 계기가 있었다. 도쿄로 가족 여행을 간 어느 날이었다. 가족 여행은 지루했다. 전시 공간을 가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떠난 여행이었지만 비슷한 모습의 쇼핑 아케이드를 끝없이 걷는 것은 꽤 곤혹스러운 일이었다. 설상가상으로 새해 연휴를 맞이하여 모든 가게가 닫혀있었다. 거리를 돌아다니며 연 음식점을 하나라도 찾으려고 헤매다가 낭패를 본 우리는 결국 편의점에서 여러 음식을 사서 돌아왔다. 과자, 음료수, 삼각김밥, 크림빵, 다종다양한 가공식품을 티브이 바로 아래 좁고 기다랗게 놓인 탁자 위에 줄을 세웠다. 내가 공연을 다시 본 것은 컵에 물을 따르고 옷걸이를 옷장 손잡이에 걸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매트리스가 두 개 나란히 붙어 있는 하얀 침대 위에 나를 포함하여 네 명이 앉아 있었는데, 우리는 동시에 이상한 기운을 경험했다. 시시한 이야기를 하다가 자연스럽게 대화가 잦아졌고 기묘함을 언급하기도 전에 침대에 놓여 있던 사물들이 떨리는 소리가 강하게 나기 시작했다. 물이 찰랑이고, 옷걸이가 좌우로 흔들리고, 비닐봉지가 바르르 떨고, 제 좌표에서 벗어난 사물과 몸이 좌우로 기우뚱거렸다.
어지럼증이 가신 한참 뒤, 뉴스 속보가 전해졌다. 이시카와현 노토반도에서 규모 7.6의 강진이 발생했다는 소식이었다. 가족들은 이런 경험을 처음이라며 호들갑을 떨었지만, 유일하게 나만 이 지진에 기시감을 느꼈다. 물컵 밖으로 엎질러진 물을 휴지로 닦으며 전에 경험했던 흔들림과 동일함을 확신했다. 뭎의 공연 혹은 연습 중 어떤 날, 균열을 경험한 적 있다. 그 공연은 고요한 정적 속에서 시작되었다. 모든 것은 제자리에 있었다. 그곳에 영원히 고정된 상태로 있어야만 했던 것들이, 아주 미세하게 사방에서 흔들리기 시작했다. 진원지는 파악할 수 없었고 흔들림을 알아차렸을 때는 엎질러진 물이었다. 옆 관객 코트의 옷자락, 책상 위 종이, 바닥에 깔려있던 모래, 웅성이는 목소리들까지 균열과 진동이 서로를 앞서나가며 반복되었고 높이 세워졌거나 강하게 올라섰던 것들은 예외 없이 무너졌다. 해가 들지 않은 공간이었기에 정적부터 무너짐까지 얼마나 긴 시간이 걸렸는지 알 수 없었다. 흔들림의 감각은 촉각의 것이라고 한다. 시각적, 청각적 정보를 모두 차단해도 촉각이 몸에 남는다. 한번 균열이라는 진동을 목격한 사람은 이 상태를 절대 잊지 못한다. 그날의 진동은 지진이라는 탈을 써 작은 호텔 방에 출몰하였다. 움직이는 유령은 목소리도 얼굴도 없이 그날과 같은 세기와 패턴으로 피부 아래 주변을 맴돌았다. 내가 그날의 공연을 기억하는지, 망각했든지 상관없다는 듯이.
교차로-폐허
몇 번의 경험 뒤에 나는 특정한 조건이나 복잡한 공식 없이도 공연을 만날 수 있게 되었다. 특정한 사물이나 상태로 목격할 수 있었던 공연은 어느새 장소가 되었다. 이때부터 나는 목격하지 않기를 포기하였다. 나의 목격은 이미 전염을 발생시켰다. 이 전염은 난데없이 여기저기 시간을 엉키게 하고, 폐허는 뒤섞여버린 시간을 자양분 삼아 자란다. 폐허는 고대 유적지나 으스스한 장소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폐허는 발치에서 자주 만날 수 있다. 가장 최근 폐허를 만난 것은 타이베이의 다다오청 어딘가 익명의 교차로였다. 근대 역사 안내소와 관광객으로 무장된 거리를 빠져나와 가장 큰 교차로에서 신호등을 기다릴 때였다. 강령술을 가능하게 하는 원형의 식탁처럼 하수구와 도보의 턱 경계가 작은 무대를 만들었고, 그 안에 갈색 신발 하나와 엎어진 라면 냄비가 있었다. 경계 밖 부근에는 작은 병이 하나 서 있었다.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신발코 옆으로 냄비의 크기보다 더 많은 양의 라면이 콘크리트 바닥에 제멋대로 늘어져 있었고, 유리병의 상표는 반쯤 긁혀 본래 무엇이 들어 있었는지 알 수 없었다. 도대체 여기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원인은 영영 알 수 없기에 질문의 의미는 없다. 신호등의 색이 이후 3 번 바뀔 때까지 이미 끝나버린 그때 그 공연을 다시 보았다.
“그는 아무도 살지 않으며 폐허가 된 사원이 마음에 들었다. 왜냐하면 그것은 눈에 보이는 세계의 최소치였기 때문이다.”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Jorge Luis Borges)의 「원형의 폐허들(Las ruinas circulares)」(1940)에서 폐허는 세계에 대해 꿈을 꿀 수 있는 공간이다. 주인공은 그 폐허가 세계와 분리되었다고 믿지만, 꿈을 꾸어 세계 안의 세계를 만듦으로써 그 경계를 직접 허문다. 결국 신전이 불탄다. 무대의 시작과 끝을 알리는 커튼이 관객석과 무대에 동시에 닿아 있고 언제든지 들추어질 수 있는 것처럼, 꿈을 꾸는 순간 폐허는 과거만으로 남기를 거부한다. 아무것도 없는데 페르시아 왕국은 초토화되었다. 미래의 죽음과 죽음의 미래 사이, 유목하는 폐허를 조우하는 나는 관객이자, 유령이자, 의자이자, 여진이자, 끝나지 않는 꿈이다.
4p8p: 8번의 연습과 4번의 공연 (2022)
두산갤러리
2022. 8. 3.(수) - 8.31.(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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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성, 연출: 뭎 Mu:p
출연: 손은교
사운드 기록: 이한범
사진 기록: 최연근 , 박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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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 큐레이터 워크샵 기획전
《칼립소 Καλυψώ》
기획: 박유진, 최선주, 홍예지
멈춰라, 시공간 (2024)
스튜디오 오픈셋
2024.7.3.(수) - 7.31.(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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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성, 연출: 뭎
기록 및 편집: 이한범
조사관: 맹나현
사설탐정: 녹스(이소여), 베일리(전혜인), 피셔(성재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