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틀러와 포스터 Knight lands>의 시공간을 지배하는 것은 공기, 즉 “분위기(雰圍氣, atmosphere)”이다. ‘분위기’는 한자로는 눈이 날리듯 에워싸는 어떤 기운, 영어로는 어떤 기체 같은 것이 퍼져 이루는 구체와 같은 영역이라는 어원 풀이를 할 수 있는데, 각지기보다는 부드러운 형체를, 선명하기보다는 투과하는 경계를 떠올리게 하는 말이다. 또한 최근의 미학 연구, 정동 이론, 문화지리학 분야에서는 주체와 대상이 주고받으며 생성하는 기운이라는 뜻으로 분위기에 주목한다. 이러한 이론적 개념으로서 분위기는 물리적 장소와 사물에 전적으로 깃들어 있는 것도 아니며, 그렇다고 그곳에 들어가 이를 신체적으로 지각하는 주체의 마음속에 주관적으로만 위치하는 것도 아니다. 어느 한쪽에서만 비롯될 수는 없는 이 공기는 주체와 대상의 사이에서 집단적으로 발생하여 공유되고, 손에 만져질 듯한 감각의 기운에 가까운 성질이다. 특히 무엇인가가 곧 일어나려는 느낌, 혹은 무엇인가가 방금 막 일어났다는 느낌은 강도가 높은 분위기를 만들어내며 거기에 모인 신체적 총체를 관통하는 긴장감을 생성한다. 기대하는 흥분과 삐져나오는 불안이 공존하는 공기, 그 분위기가 빈 그릇과 같은 공간의 기형을 점차 빚어 나간다.
뭎은 ‘숲’이라는 이름을 가진 공연장을 초승달 같은 곡면의 관객석이 가로지르는 구조로 구획하였다. 한 열에 2인만이 앉을 수 있는 그다지 넓지 않은 폭의 이 ‘달’의 테에 앉아 공연을 보는 관객은 끊임없이 시선을 이동시킬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왼쪽과 오른쪽, 앞쪽과 뒤쪽으로, 말하자면 사분할된 공간을 시야에 배치하기 위해 관객은 분주하다. 그리고 여기에 막처럼 기능하는 유리문 너머에 있는 바깥쪽과 안쪽이 더해지고, 또 여기에 관객석의 단차가 가져오는 층위까지 가담한다. 낮은 단과 높은 단이라는 차이가 잘 보이고 덜 보이고의 차원이 아니라 관객에게 저마다 다른 ‘보는’ 역할을 부여하는 듯 다가온다.
30명 남짓의 관객이 저마다 다른 시점에서 뿜어내는 시선은 마치 필라멘트처럼 공간을 가득 채운다. 진공관의 내부에 전류가 흐를 때 열전자를 방출하는 얇고 긴 도선인 필라멘트처럼, 애초에 정확히 일치할 수 없는 관객의 눈길들은 서로 다른 방향으로 뻗어나가며 전자운동을 일으킨다. 이 같은 시선의 가닥들은 퍼포머들의 움직임이 자아내는 동선과 교차하면서 힘의 교점을 맺고 에너지를 끌어모은다. 이렇게 거미줄처럼 시선과 동선이 만나고 접히는 결절 혹은 굴절 점들은 관객마다, 퍼포머마다 외부와 내부를 다르게 구성하면서 서로 겨루는 힘들을 터뜨리고 방사한다.
네 기사를 형상화했을 네 명의 퍼포머는 동일한 방식으로 밖에서 안으로 들어왔다. 젖은 모습으로, 열리는 문을 찾아 들어와, 방에서 옷을 갈아입고, 몸을 말린 후, 그 옷을 줄에 매다는 일련의 움직임. 서로 다른 성격을 표현한 듯한 의상을 입은 네 명의 퍼포머들이 일종의 의식처럼 반복되는 단위 움직임을 수행한다. 관객의 시선에 예속된 주체이지만 동시에 그 시선으로부터 해방된 주체를 표현하는 이들의 몸짓은 네 명이지만 같은 인물의 다른 현현처럼 보이기도 한다.
여기에 주인공의 방 건너편 구간에서는 전속력으로 달리는 시퀀스가 삽입되었다. 미세한 지점과 순간을 가늠하며 힘의 배분을 통해 숨죽임과 대폭발을 조절하는 퍼포머의 동작은 힘의 분산과 응집이라는 반복을 통해 또 다른 기운을 공간에 새긴다. 달리는 힘이 그어 나가는 선은, 젖은 옷을 매달기 전 천천히 크게 움직이는 줄의 포물선과 공명하면서, 관객석의 좌우 공기를 휘저어 재구성한다. 퍼포머들의 신체는 공간에서 점층하는 힘들을 또렷하게 하는 도관의 역할을 하는데, 뭎은 이들의 움직임을 안무함으로써 공기(空氣)의 힘들을 접어 포개고(fold) 감싸 두르면서(envelop) 결국엔 공기(空器)를 형태화한다.[ 1 ] 공연의 어느 시점, 유리문의 바깥에서 접근한 차량의 헤드라이트가 번쩍하는 순간, 이 공기의 공기는 무수한 힘의 가닥을 일순 드러내며 출렁였다.
버틀러와 포스터_Knight lands (2023)
다목적홀 숲, 노들섬
/
연출, 구성: 뭎
출연: 손민선, 신상미, 한아름, 조형준
사운드: 김성환
조명: 임재덕
구조설계: 금손건축
스타일링: 안솔
작동: 김준환, 홍서효
진행, 홍보: 맹나현
영상기록: 신목야
사진기록: 최연근
- [ 1 ]
기호학적인 미학에서 분위기의 미학으로의 전환을 주도한 게르노트 뵈메는 언어의 의미가 아닌 신체의 감각을 강조하면서 분위기란 어떤 것이 존재하는 장, 그것이 밖으로 미치는 힘이 공간 속에 흘러들어 펼쳐지는 현실, 즉 수행적인 공간이라고 말한다. Gernot Böhme, Atmospheric Architectures: The Aesthetics of Felt Spaces, ed. trans. Anna Christina Engels-Schwarzpaul (London: Bloomsbury, 2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