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空氣 - 그 자리에 감도는 분위기
김성은
  • 뭎 - 버틀러와 포스터

퍼포먼스는 시간에 기반한 예술이다. 시간의 흐름 속에서만 성립하고 특정한 시간 틀을 벗어나면 존재하지 않게 된다. 그 시간을 사진과 영상이라는 물리적 지지체로 붙들어 둔다 한들 그것은 이미 죽은 시간, 지나간 시간, 다시는 동일하게 경험할 수 없는 시간이다. 퍼포먼스의 사후 형식, 즉 무대-이후를 실험하고자 탄생한 뭎의 <버틀러와 포스터>는 여기에 한 겹의 시간 층위가 더해진다. 3부작인 뭎의 <버틀러와 포스터>는 연작의 각 공연 사이에 흐르는 시간이 있을 것이다. 영국 시대극의 주인공들일 것만 같은 이름의 ‘버틀러와 포스터’는 어쩐지 공연 내용에 앞서 두 인물의 정체를 먼저 상상하게 만든다. 구상하는 작가들의 시간 속에서, 기대하는 관객들의 시간 속에서, 비정형의 모습으로 그렇게 한참을 머물다가 나타났을 ‘버틀러와 포스터’는 어쩌면 인물이 아니라 시간의 형체일지 모른다.

 

그래서 뭎의 이 작업을 사후에 돌아보는 일은 마치 파일 탐색기에서 ‘수정한 날짜’가 각기 다른 폴더들의 안에서, 폴더들의 사이에서, 재생, 일시정지, 되감기, 빨리감기, 건너뛰기를 행하며 거기에 도사리고 있는, 그러나 결코 원본일 수 없는 시간을 캐내는 것과 같다. 공연 자체가 벌어지는 시간보다 훨씬 무수할 그 시간들을 직선이 아니라 자유로운 방향감각으로 마주하고 가로지르며, 시간을 일종의 가상 공간화하는 행위에 가까운 일이라고도 할 수 있다. 연작 중 두 번째인 <버틀러와 포스터 Knight lands>만을 관람한 필자에게, 함께했던 그 무대의 시간이 어떤 공간감으로 남았는지 2번 폴더 속을 헤집고 들추다가, 그리고 2번의 바깥으로서 비록 1번은 비어 있고 아직 3번은 생성되지 않았지만 이 또한 짐작하고 헤아리다가, 이윽고 다다른 입력값은 ‘공기’이다: 空氣-空器-共起.

 

 

1/3. 空氣 - 그 자리에 감도는 분위기
 

공연장에 도착했다. 좌석의 번호를 선택하라는 안내와 함께 A4 크기의 종이를 받는다. 통상적인 공연에서는 입장권이면서 소개문일 이 한 장의 종이는 그러나 대개의 면이 비어 있다. 공간의 분위기를 암시하는 것인가? 거기에 적힌 것들은 종이의 군데군데 작은 활자로 박힌 단어들, 숫자들이다. 입장하게 될 신비로운 그곳에 숨은 미스터리를 풀기 위한 코드라도 된다는 듯, 정밀한 측정을 바탕으로 인쇄 위치가 정해지기라도 했다는 듯. 위쪽에 적혀 있는 대로 이곳은 “기사들의 영토”인가? 지팡이의 기사, 검의 기사, 컵의 기사, 펜터클의 기사. 종이의 가운데를 가로지르는 점선이 눈에 띈다. 무심코 그 선을 따라 종이를 접으니 미처 보지 못했던 뒷면에도 무엇인가가 적혀 있다. 텅 빈 면의 한복판에 놓인 한 문장. “The knight on the rim is dim.” 체스를 잘 알지 못하는 관객인 나는 이 문장이 관용구라는 사실을 알지 못한 채, “dim”이 연상시키는 의미들을 이어 본다. 어둑하다, 희미하다, 파리하다, 암울하다, ... 곧이곧대로 직역하다가 어느새 제멋대로 뜻을 덧붙이며 앞으로 어떤 기운의 공연이 펼쳐질지 짐작해 보려 한다. 도움이 될까 싶어 종이를 가로로 다시 한번 접어 손에 쥐고서는, 접힌 면들을 뒤척이며, 접힌 선들을 따라가며, 그 면과 선 위를 서성인다.

 

공연의 시작을 알리는 인솔자가 우리를 이상하게도 공연장의 바깥으로 안내한다. 알싸한 12월의 겨울 공기가 맞이하는 그곳에서 또 잠시 서성이는 사이, 공연장의 안쪽에 드리워져 있던 장막이 퍼포머들에 의해 하나씩 걷힌다. 안과 밖을 투명하게 가르는 유리문들이 하나씩 모습을 드러내는 사이, 밖에서 대기하던 나는 무대 뒤에서 대기하는 공연 주인공인 된 것 같은 공간의 역전을 잠시 느껴 약간 긴장한다. 안내자가 문을 열려고 하는 걸 보니 이제 입장할 타이밍인가 생각하던 차, 문이 열리지 않는다. 준비의 미숙인가? 나는 짐짓 어리둥절하지 않은 척을 하며 이 문 저 문 열어보는 안내자의 움직임을 눈으로 좇지만, 안내자는 그다지 당황한 것 같지 않다. 계산된 동작인가? 마침내 열린 한 문을 통해 우리는 안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배처럼 둥그런 호 위에서 각자 선택한 번호의 단에 자리 잡고 앉는다. 틀림없이 매우 튼튼하게 만들어졌겠지만, 무대 한가운데에 둥실 떠 있는 것처럼 놓인 관객석에 앉은 나는 또 어쩐지 긴장한다. 맞은편에 앉은 이들과 애써 눈을 마주치지 않으며, 전면에 집중해야 하는 보통의 공연과 달리 이쪽저쪽을 두리번거리며 다시 손에 쥔 종이를 부스럭댄다.

 

드디어 첫 번째 퍼포머가 모습을 드러냈다. 유리문 바깥에서 슬며시 걸어와서는 삐걱삐걱 문의 손잡이를 당기며 열리는 문을 찾는다. 아까 그 안내자와 같은 동작이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 공연장의 안과 밖, 공연의 앞과 뒤가 돌연 하나의 공기로 휘감긴다. 그런데, 분명히 밖에는 비가 내리지 않는데, 안으로 들어온 퍼포머는 흠뻑 젖어 있다. 물을 뚝뚝 흘리며 걸어 들어간 구석에서 천천히 젖은 옷을 벗는다. 어두운 밤, 어쩐지 처연한 분위기의 이 방은 관객석 한쪽에 가깝게 붙어 있고, 세계로부터 고립된 듯한 자신의 방에서 퍼포머는 어떤 감정의 허물을 벗는 것 같다. 바로 옆쪽 관객의 눈은 행여 남의 방을 엿보는 관음적인 시선이 될까 봐 공간의 여기저기를 정처 없이 배회한다. 반면, 그 반대쪽 관객이 바라보는 퍼포머의 뒷모습은 빛과 어둠, 가려짐과 드러냄의 대비가 던지는 쓸쓸한 정서로 인해 에드워드 호퍼의 <밤의 창문> 같은 회화들을 떠오르게도 한다. 적나라한 신체의 피부는 유약함, 불안함, 위태로움을 선연하게 실어 나른다. 옷을 갈아입고 매무새를 가다듬은 퍼포머는 벗어 놓은 옷을 들고 무대의 중앙으로 걸어 나온다. 그리고 줄에 매다는 젖은 옷. 어렴풋하게 물 떨어지는 소리는 공연 내내 창백한 전조 같은 기운을 발산한다. 그 소리는 퍼포머의 벗은 옷 속에 꾹꾹 눌러 담은 내밀한 감정의 돌기들을 불거지게 하며 공간을 채우고 관객의 신체까지도 그 공기의 막 안으로 이입시킨다.[ 1 ]

 

 


버틀러와 포스터_Knight lands (2023) 

 

다목적홀 숲, 노들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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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출, 구성: 뭎 
출연: 손민선, 신상미, 한아름, 조형준
사운드: 김성환
조명: 임재덕
구조설계: 금손건축
스타일링: 안솔
작동: 김준환, 홍서효
진행, 홍보: 맹나현
영상기록: 신목야
사진기록: 최연근

  • [ 1 ]

    미학자인 토니노 그리페로는 우리가 어떤 공간에서 뭔가를 느낄 때 이를 ‘공기(空氣)’로 접근하여 살펴보는 것은, 그 감정, 정서, 정동이 주체의 내부가 아니라 다른 존재들과 함께 있음으로써만 발생한다는 점을 각성하게 하여 물리적, 심리적 민감도를 높인다고 말한다. Tonino Griffero, The Atmospheric “We”: Moods and Collective Feelings (Milan: Mimesis International, 2021).

  • 김성은

    김성은은 미술관과 동시대 미술을 연구하는 문화인류학자이자 기획자이다. 미디어아트 전시의 역사, 큐레토리얼과 공동·공유 개념의 결합에 관심이 있다. 2011년부터 2023년까지 리움미술관과 백남준아트센터에서 일했고, 2024년부터는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에서 일하고 있다.